문화유산 답사 이야기/문화유산 답사 이야기 전라도편 4

진도 운림산방(雲林山房)

소재지: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64 진도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인 소치(小癡) 허련(許鍊) 선생(1808~1893)의 화실 당호이다. 소치는 20세 떼에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에게서 학문과 인격을 수양하고, 공제 윤두서의 화첩을 통해 그림에 대한 다양한 채법과 화법을 터득한다. 초의선사의 천거로 33세 때부터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 입문한 소치는 본격적으로 서화를 배우게 된다. 40세(1874년)에는 낙선재에서 헌종임금을 알현하게 되면서 흥선대원군, 권돈인 등 권문세가 들과 글을 짓고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추사는 중국원나라 4대화가의 한사람인 황공망을 대치(大癡)라 했는데 그와 견줄만하다고 해서 소치(小癡)라는 아호를 내려주었다. 추사로 부터 '천리를 여행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물염정(勿染亭)과 김삿갓 김병연(金炳淵)

물염정(勿染亭)(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3호) 전남 화순군 이서면 창량리 373 물염정은 조선 중종, 명종대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및 구례, 풍기군수를 역임한 홍주송씨 물염(勿染) 송정순(宋庭筍/1521~1584)이 청렴결백하고 후덕한 정치가로 이름이 높았던 송정순이 혼탁한 권력에 염증을 느끼고 세상 어떤 티끌에도 물들지 않고 살겠노라 선언하고 낙향하여 세운 정자라 한다. 후사가 없자 훗날 외손 금성나씨 나무송(羅茂松)과 나무춘(羅茂春) 형제에게 물려주었고, 그후 수차례 중수를 해오다 1966년, 1981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염정이 있는 주변에는 빼어난 경관과 산수를 자랑하는 적벽이 있는 지역으로 당대의 명사들인 김인후(金麟厚), 이 정(李 楨), 권 필(權 韠), 김창협(金昌協), 김..

풀리지 않는 운주사지/雲住寺址(사적 제312호)의 수수께끼

위치 :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용강리 일원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 있는 운주사( 雲住寺) 는 천불천탑(千佛千塔)이 존재했던 우리나라의 유일한 사찰이다. 이들 탑들은 주변 산과 들판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서 돌부처 70여구와 석탑 18기를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30여년 전만해도 허무러진 석탑이 즐비했었다고 당시 답사객은 전한다. 문헌에 따르면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석불, 석탑 각 1천구씩 있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는 분명히 실재했었다고 판단된다. 현재 남아 있는 석불상은 10m의 거구에서부터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여러종류의 불상들이 경내에 정리되어 있다. 이들 불상은 대개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모양, 돌기둥 모..

자연과 조화이룬 담양 소쇄원(명승 제40호)

담양 소쇄원은 조선중기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한 대표적인 민간 별서정원이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로 인해 능주로 유배되고 사사(賜死)되자 세속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창암촌에 소쇄원을 조성하였다. 소쇄원의 조성연대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우나 양산보가 낙향한 1519년 이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송순, 김인후 등의 도움을 받고 그의 아들인 자징(子澂)과 손자인 천운(千運) 등 3대에 걸쳐 완성되면서 후손들의 노력에 의해 오늘에 이르렀다. 소쇄원은 조선중기 호남사림문화를 이끈 인물의 교류처 역할을 하였다. 면앙 송순,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사촌 김윤재,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드나들면서 정치, 학문, 사상 등을 논하던 구심점 역할을 ..